2024 서울국제도서전 2024.06.26 – 06.30 l 코엑스 C&D1홀

해외도서전 한국관

2020 볼로냐아동도서전 한국관

개요

『Your Next Book』 코로나19로 인한 볼로냐아동도서전 개최 취소로 한국관 운영 대신 한국의 평론가와 편집자가 추천한 도서 50권을 선정하고 소개하는 책을 만들어 해외도서전 개최 국에 전달하였습니다.

『Your Next Book』에 소개된 아동/청소년 도서 일부를 소개합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첨부된 파일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안녕

글 박준 / 그림 김한나

시인의 아버지가 키우는 개 '단비'를 주인공으로 하는 시 그림책이다.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속 「단비」라는 시를 읽고 보면 더 풍요로워진다. 단비가 낳은 여섯 마리의 새끼는 한 마리씩 다른 집으로 보내졌다. 별다른 내색이 없었던 단비는 마지막 새끼를 보낸 날부터 집 안 곳곳을 쉬지 않고 뛰어다녔다. 책에는 그런 사연을 품고 사는 단비에게 어느 날 날아든 새와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이 담겼다. ‘만남’이라는 안녕의 기쁨에 설레게 하고, ‘이별’이라는 안녕의 슬픔에 시무룩하게도 만들고, ‘시작’이라는 안녕에서 ‘삶’이라는 단어를 발음하게 하고, ‘끝’이라는 안녕에서 ‘죽음’이라는 단어에 눈뜨게도 하는 책을 통해 ‘안녕’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만나지 못한 이를 그리워할 때, 눈은 먼 곳으로 가닿습니다. 보고 싶은 이를 보고 싶어할 때, 마음은 가까이 있고요.” 시인의 말을 음미하면, 우리가 안녕을 말하는 순간 우리 안팎을 휘감는 공기의 근원이 곧 그리움이구나, 알게 된다. “한번 눈으로 본 것들은 언제라도 다시 그려낼 수 있어. 그리고 그리고 또 그리는 것을 그리움이라고 하는 거야.” 시인의 말을 따라가면, 보고 싶어 애가 타는 마음일 때 그리면 그려지는 마음이라고, 그리움의 정의를 새롭게 깨닫게 된다.

5번 레인

글 은소홀 / 그림 노인경

『5번 레인』은 수영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그것만으로도 솔깃하다. 수영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속의 아이들은 어떤 일을 겪고 무슨 생각을 할까. 첫 장에서부터 끼쳐 오는 물 냄새를 따라 수영장에 도착한 뒤 아이들의 움직임을 따라 물을 헤치고 나아가면 우리는 투명하고 단단한 아이들의 성장기와 만나게 된다. 자신의 길을 직접 선택하고 그 길을 향해 전력으로 나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부시고, 여름의 푸른빛 아래 놓인 우정과 사랑, 두근거림과 설렘의 장면들은 맑고 청량하다. 이 작품은 아이들이 스스로를 향해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현실에 밀착해 그리고 있다. 『5번 레인』 속 아이들은 자기 몸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동작을 하기 위해 애쓴다. 옆 레인의 아이를 이겨야 하는 한편 자신의 기록도 깨야 한다. 연습할 때도 경기에 나가서도 자신의 움직임이 수치화되고 등수화되는 것을 이겨 내고 버텨야 한다. 재미있어서 혹은 재능 있어서 시작한 수영을 때로는 버거운 짐처럼 느끼기도 하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제 몸과 마음의 한계를 맞닥뜨리면서 나는 왜 이 길을 가고 있는지, 내가 정말 가고 싶은 길이 맞는지, 내가 해내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파라파냐무냐무

이지은

그림책의 배경은 연둣빛 동산이 나지막하게 이어지는 마을이다. 동화적인 공간이 주는 따듯한 행복감이 책 전체를 감싸고, 하얗고 말랑한 ‘마시멜롱’과 꿈벅꿈벅 어수룩한 ‘털숭숭이’가 심쿵한 귀여움을 선사한다. 하양과 까망, 작고 크고, 가볍고 무겁고, 매끈하고 부들거리고 ... 시각, 청각, 촉각 모두 감각적 대비를 보이는 두 캐릭터들이 그림책 화면을 종횡하며 감상자의 눈을 붙든다. 마시멜로가 사는 평화로운 마을. 풍요로운 먹거리와 폭신한 땅, 느긋해서 잠이 솔솔 올 것만 같은 마을의 동산 너머로 어느 날 천둥 같은 소리가 들려온다.“냐무냐무? 냠냠? 우리를 냠냠 먹겠다는 말이야?” ‘이파라파냐무냐무’, 모든 일은 이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다. 세상 느긋하던 마시멜롱들이 결집하고 제법 비장한 각오를 다진다. 털숭숭이를 내쫓고 마을의 평온을 되찾겠다는 마음으로 작은 몸들을 합하고 전열을 정비한다. 코코아에 타 먹히거나 불에 구워질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그림책의 화면은 속 타는 마음을 따라가듯, 속도감 있는 전개를 펼친다. 섬세한 컷 분할로 캐릭터의 움직임을 순차적으로 담아 이야기를 고조시키고 뒤이어 배치한 펼침면으로 유머러스한 결과를 보여준다. 이지은 작가는 특유의 균형감 있는 시선으로 선입견과 오해가 생겨나고 풀리는 상황을 참 다정하게 그려냈다. 누구나 오해를 할 수도, 받을 수도 있다. 그럴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혹시 ‘오해’는 아닐까? 생각하는 순간이 있다면, 그게 서로를 이해하는 첫 단추가 될 수도 있다. 작가는 그림책 전체를 아우르는 말 한마디, ‘이파라파냐무냐무’로 이야기의 재미와 메시지를 동시에 전한다.

물개 할망

글 오미경 / 그림 이명애

푸른빛으로 넘실대는 그림책 한 권을 가만히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없이 정화되는 듯 평온해진다. 제주의 넓고 푸른 바다가 내 품에 담긴 것 같아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제주 할망』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유럽 전설인 셀키(Selkie) 전설을 실어 제주 해녀 이야기와 연결을 시키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바다표범 모습을 한 요괴의 일종인 셀키는 바다에서 나와 가죽을 벗고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사람들과 어울려 살곤 했다고 전해진다.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의 그림책 『난 커서 바다표범이 될 거야』(풀빛, 2015)도 셀키 전설을 토대로 하고 있다. 본문이 펼쳐지면서 이야기가 한 아이의 시점으로 전환된다. 프롤로그에서 전한 가죽을 잃어버려 바다로 돌아가지 못한 물개 여자의 손녀가 바로 이 아이다. 가깝고도 먼 바다, 할머니를 기다리는 손녀는 멀리서 들려오는 숨비 소리에 할머니가 무사함을 알고 오늘도 마음을 한시름 놓는다. 푸른 바다를 건너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올 때면 바다에 비친 구름때문에 바다가 하늘처럼 보인다. 마치 할머니가 하늘을 헤엄쳐 돌아오는 듯 표현한 장면이 엄숙하면서도 근사해 신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배 안 고프냐 묻는 손녀에게 바람을 많이 먹어 괜찮다는 할머니, 손녀의 걱정에 제주도 사투리로 답하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정겹다. 할머니가 망사리 가득 건져 올린 건 푸른 바다다. 감탄하는 손녀에게 할머니는 늘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이게 다 용왕님이 주신 거주. 할망은 용왕님 딸이난.” 아이는 할머니의 멋진 솜씨와 그 보물을 건네준 용왕의 맘씨에 감탄하며 할머니를 졸라댄다. 자신도 꼭 바다에 들어가고 싶다고. 하지만 할머니는 아직 더 커야 한다면서 웃기만 한다. 모든 것을 내어주는 착하고 고마운 바다지만 어떤 날엔 모든 것을 삼킬 듯 두렵고 무서운 바다, 아이는 비바람 부는 날 바다로 나간 할머니를 기다리며 마음 졸인다. 할머니가 물개가 돼서 영영 돌아오지 않으면 어쩔까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거린다. 아이에게도 드디어 그날이 찾아왔다. 생일 선물로 할머니에게 물개 옷을 선물 받아 아기 바당에서 연습한 아이가 드디어 깊은 바다에 들어가는 날이다. “바당에서 욕심내민 안 뒈여. 물숨 먹엉 큰일 나난 조심허라게.” 평생을 자연에 순응하며 성실하게 살아온 할머니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 하지만 아이는 할머니의 말을 잊고 말았다. 산호 숲 사이 반짝이는 것이 탐이 나 손을 뻗는 순간 그만 물숨을 먹고 만 것이다. 글 없이 이어지는 두 장의 그림만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이가 산호 숲 사이를 뒹굴며 바다 깊이 떨어지는 동안 빛으로 넘실대던 바다는 어둠에 휩싸여 무섭고 두려운 장소로 변한다. 그 순간 아이를 향해 서서히 다가오는 커다란 검은 그림자. 그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전설 속 물개였을까? 검은 해녀복을 입은 할머니였을까? 그림책은 독자에게 마지막 상상을 맡기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물이 되는 꿈

글 루시드 폴 / 그림 이수지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아름다운 노래 〈물이 되는 꿈〉이 그림책으로 탄생했다. ‘노래하는 시인’으로 불리는 루시드 폴의 〈물이 되는 꿈〉은 한 편의 시 같은 아름다운 노랫말로 손꼽히는 노래다. 자연의 평온함과 자유로움을 담은 노랫말은 이수지의 그림과 만나 더욱 깊어졌다. 힘차면서 잔잔하고, 강하면서 유연한 물의 이미지를 수채화로 섬세하고 강렬하게 표현했다. 첫 장면에서 보조 장비를 찬 한 아이가 수영장에 앉아 있다. 곧 물속으로 들어간 아이는 물 위에 둥둥 떠 있다. 흐르는 물결을 따라 아이는 점점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간다. 강으로, 바다로, 물로……. 어느새 온몸이 물빛으로 물든 아이는 자유롭게 헤엄을 친다. 작가는 물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그림책의 전체 분위기를 이끌고 가는 도구와 색으로 수채 물감과 파란색을 골랐다. 분위기가 고조될 때는 물의 움직임과 모양을 다양하게 담아내 흥겨움을 표현하고, 색의 농도와 명암을 통해 깊이를 더했다. 노래가 한 바퀴 돌아 흐르는 병풍 구조를 구현한 책을 펼쳐 세우면 앞면과 뒷면에 그림이 하나로 이어진다. 뒷면에는 루시드 폴이 직접 손으로 그린 악보에 이수지의 그림을 더한 세상에 하나뿐인 악보가 담겨 있다. 연필로 그린 오선지와 음표 위에 수채화가 더해진 아날로그 감성이 가득한 악보다. 루시드 폴의 노래를 좋아하는 이들은 물론, 연주하며 노래를 함께 불러 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기쁨을 주는 선물이 될 것이다.

맛있는 건 맛있어

글 김양미 / 그림 김효은

맛있다는 건 무엇일까. 맛있는 음식 속에는 시간이, 사람이 그리고 추억과 그리움이 깃든다. 그림책 『맛있는 건 맛있어』는 한 여자아이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맛있다’에 깃든 이런 다층적 의미를 깨달아 가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이야기는 관찰로 시작된다. 고양이, 선인장, 동생은 무얼 먹을까. 엄마와 아빠는 어떤 음식을 좋아할까. 이렇게 음식을 매개로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스파게티는 길고, 긴 건 국수다. 국수를 먹으면 오래 산다. 레몬주스는 노랗고, 노란 건 파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꼬리 물기는 뭐지?’ 하는 순간 부엌 펼침 장면이 나온다. 아하, 아이는 엄마가 음식을 만드는 부엌 식탁에 앉아 이런저런 음식을 먹으며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새우튀김은 바싹한 게 맛있고, 뽀뽀할 때 엄마 냄새도 맛있고, 같이 먹으면 더 맛있고, 친구랑 노는 시간은 후딱 갈 만큼 맛있다. 아빠와 물놀이를 하고 나서 먹는 바나나 우유는 꿀맛이다. 이렇게 ‘맛있다’가 단지 먹는다는 행위를 넘어선다는 걸 깨닫는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아이는 동생에게 떡국을 먹어야 한 살을 더 먹는다고 훈수를 둘만큼 훌쩍 성장한다. 글을 쓴 김양미 작가는 감각적인 언어를 사용해 점층적으로 의미를 쌓아가며 독자의 마음을 두드린다. 그림을 그린 김효은 작가는 음식을 그림책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대접한다. 음식을 강조하기 위해 배경을 생략한 라인드로잉 그리고 필요한 만큼만 색을 썼다. 그러다 아이의 생각과 현실을 구분하는 가름선 역할을 하는 장면들에 이르면 펼침 장면 가득 색을 사용했다. 덕분에 독자는 그림에서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들을 눈치챌 수 있다. 오늘 하루 맛있는 걸 먹고, 맛있는 게 뭔지를 생각한 아이의 하루가 저물어간다. 원경으로 노을이 내려앉은 동네 풍경이 보이고 그 가운데 불이 환하게 켜진 아이의 집이 눈에 들어온다. 온 가족이 모여앉아 있고 아빠가 저녁으로 떡국을 끓여 내온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장면이다.

미장이

글 이명환

이야기는 아이의 시선을 따라 흘러간다. 가족을 위해 고단한 하루를 힘차게 살아내는 아빠와 아이들 곁에서 조용히 삶을 꾸리는 엄마, 눈 가는 곳곳에서 아빠의 흔적을 찾아내며 그리움을 삭이는 아이의 모습이 이야기에 담긴다. 새벽녘, 잠든 아이들을 뒤로 하고 집을 나서는 아빠는 목욕탕, 지하철, 수영장 등에 타일을 붙이는 일을 한다. 사람들은 아빠를 미장이라 부르지만, 아이의 눈에 아빠는 예술가다. 타일이 한 장 한 장 더해질 때마다 빛나는 그림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아빠가 한 달씩 일을 하고 올 때면 조기를 사들고 왔고, 일을 갈 때면 잠든 아이들을 남겨 두고 조용히 집을 나서곤 했다. 아빠가 건물 벽에 쓱쓱 회반죽을 바르고 타일을 붙이는 동안, 아이는 집에서 아빠의 타일그림과 닮은 그림을 그린다. 아빠가 곁에 없어도 아빠의 작품들은 가족이 가는 곳곳에 함께 있다. “아빠가 곁에 없어도, 아빠의 작품은 우리 곁에 늘 있다. 주위를 돌아보면 어디든 있다, 벽에도 바닥에도 있다.” 덕분에 아이는 가슴을 쫙 펼 수 있다. “나는 아빠가 집을 나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달그락, 엄마의 설거지 소리만 조용히 울렸다.” 아빠는 가족의 삶을 묵묵함과 성실함으로 일구고, 그 곁에서 엄마가 조용히 빈자리를 메워준다. 아빠와 엄마가 버티고 있는 가정의 단단한 일상 속에서 아이는 세상을 바라보고 자란다.

엄청난 눈

박현민

남쪽 섬에서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북쪽의 마을과 산과 길을 뒤덮었다. 온통 하얀 눈이 쌓인 세상이 됐다. 눈이 내리면 힘들고 불편하고 위험한 일이 생기기 때문에 풍경을 즐기기 전부터 여러 가지 걱정이 든다. 눈송이가 말 그대로 함박만 했는데 오래간만이어서인지 믿기지 않았다. 눈은 잠시 모든 것을 멈추게 한다.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고요하다. 그러나 곧 어린이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엄청난 눈이에요. 이렇게 많이 온 건 처음 봐요.” 박현민 작가의 그림책 『엄청난 눈』의 첫 문장이다. 이 책은 제본선을 상단에 둬 위로 넘기게 돼 있다. 책을 펼치면 세로로 긴 프레임이 만들어져 눈이 내리는 모습을 나타내기 좋다. 두께가 2㎜도 넘는 표지의 한 부분을 울퉁불퉁한 집 모양으로 오려뒀다. 그 안쪽으로 그림자가 떨어지면서 눈에 파묻힌 어떤 집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공간의 깊이가 생긴다. 오린 부분이 직선이 아니어서 눈덩이의 질감이 살아난다. 눈처럼 비스듬히 내려오는 네 글자 제목 위로 하얀 눈발이 날린다. 희끗희끗 묻은 눈을 툭툭 털어주는 것처럼 손으로 만져본다. 광택이 없는 포근한 질감이다. 엄청난 눈이 내린 날의 이야기다. 털모자를 쓰고 단단히 옷을 챙겨 입은 다음 눈 세상으로 나온 두 어린이는 삽으로 눈 속에 굴을 만들기 시작한다. 삽으로 모자란 눈을 만난 어린이들은 제설차를 몰고 눈 속을 뚫고 올라간다. 얼마나 많은 눈이 내린 것일까. 정방형의 작은 그림책이지만 크기의 상대성을 활용해 만들어낸 공간감이 대단하다. 장면을 거듭 넘길수록 폭설의 정확한 규모를 알 수가 없다. 두 어린이는 눈 치우기를 그만두고 눈 속에서 같이 놀기 시작한다. 여백은 형태가 되고 어린이들의 몸은 눈이 되고 어떤 하얀 색은 배경이며 어떤 하얀 색은 인물의 동작이 된다. 독자는 눈을 크게 뜨고 하얀 눈 속에서 하얗게 존재하는 숨겨진 이미지를 찾아야 한다. 산더미 같은 눈 속에서 무언가를 찾듯이 신나게 파헤치는 기분으로 읽다 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하고 노란 원뿔이 나타난다. 이것은 또 무엇일까? 박 작가는 ‘공간과 스케일을 연구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이 그림책을 만들던 해에는 유난히 눈이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올해의 첫 그림책은 이 책이 알맞을 것 같다. ‘엄청난 눈’은 엄청난 가능성과 잠재력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모든 독자가 잠재력을 마음껏 발견하는 새해가 되기를 바란다.

꽝 없는 뽑기 기계

글 곽유진 / 그림 차상미

『꽝 없는 뽑기 기계』는 어느 문구점 앞에 놓인 ‘꽝’ 없는 뽑기 기계를 매개로 일어나는 마법 같은 이야기를 담은 판타지 동화다. 슬픔과 상실감에 빠져 있는 한 아이가 꽝 없는 뽑기 기계를 통해 한 발 한 발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를 재구성해 건강하게 일상으로 복귀하는 이야기를 담담하고도 가슴 뭉클하게 그려낸다. 오백 원짜리 동전을 넣고 돌렸을 때 꽝 없이 무엇이든 나오는 뽑기 기계가 있다는 독특한 설정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이야기의 몰입도를 높인다. 등하굣길에 늘 뽑기를 하던 희수는 어느 날부터 뽑기를 멀리한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 자세히 밝혀지지 않는 가운데 희수가 다시 뽑기를 하게 되면서 얼어붙었던 마음과 목소리를 차츰차츰 되찾아간다. 사실 희수는 부모를 잃은 충격으로 실어증을 앓고 있었던 것. 이야기는 처음부터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지만 희수가 어느 문구점 앞에서 꽝 없는 뽑기 기계를 발견하고 뽑기를 다시 시도하고, 그 뽑기에서 나온 상품들을 통해서 마음의 건강을 되찾는 마술적인 치유의 과정을 보여준다.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주인공 희수의 감정을 따라가게 되고, 그다음에는 뽑기 기계로 희수를 안내하는 남자아이, 여아자이 시선으로 희수를 바라보며, 희수의 삶을 응원하게 된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환상성이 가득한 이야기를 통해 따뜻하게 그린다.

지금은 여행 중

글 김우주 / 그림 신은경

교실, 택시, 공항, 슈퍼 등을 무대로 오늘을 살아가는 어린이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일곱 편의 동화를 묶었다. 첫 동화집을 펴내는 신인 작가 김우주는 세상 어디에나 있지만 소외당하는 약한 어린이들에게 주목하여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어려운 환경에 놓인 어린이들이 소외당하는 문제점을 꼬집으며 현실을 낯설게 뒤집는 방식으로 독자에게 다가간다. 화가 신은정은 각 단편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지게 세밀한 펜 선과 따뜻한 색감 표현으로 무게감 있게 그림을 그렸고, 등장인물이 느끼는 찰나의 감정을 포착해 작품의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한 번도 교실 창문을 연 적이 없는 학생들, 아빠가 모는 택시를 타고 학원에 가는 아이, 배를 채우기 위해 슈퍼에서 먹을 것을 훔치는 아이, 돌아가신 아빠와 꼭 닮은 남자를 만난 아이……. 『지금은 여행 중』에 담긴 단편에는 그늘져 있지만 저마다의 독특함을 간직한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하지만 이들의 이름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름 없이 ‘나’로 쓰이는 경우가 많고, 「누구」에서는 모든 등장인물을 이름 대신 숫자로 부른다. 「슈퍼맨을 믿어」에서는 주인공인 규연이의 이름이 나오지만, 정작 규연이는 슈퍼를 지키는 남자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늘 ‘슈퍼맨’이라고 부른다. 한 사람 한 사람을 객관화하여 상징하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덕분에, 독자들은 여러 등장인물의 입장에 자신을 대입하여 읽게 된다. 특히 「지금은 여행 중」에서 ‘너’라고 불리는 주인공은 마치 독자 자기 자신인 것처럼 느껴져, 독자들이 주인공의 처지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누구라도 약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섬세한 자세를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