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 Next Book』 | 코로나19로 인한 볼로냐아동도서전 개최 취소로 한국관 운영 대신 한국의 평론가와 편집자가 추천한 도서 50권을 선정하고 소개하는 책을 만들어 해외도서전 개최 국에 전달하였습니다. 『Your Next Book』에 소개된 아동/청소년 도서 일부를 소개합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자료실에서 『Your Next Book』 파일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
장류진의 소설은 말한다. “가르쳐주려고 그러는 거야. 세상이 어떻게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오만원을 내야 오만원을 돌려받는 거고, 만이천원을 내면 만이천원짜리 축하를 받는 거라고. 아직도 모르나본데, 여기는 원래 그런 곳이라고 말이야.”(「잘 살겠습니다」, 28쪽) 이 세계는 정확히 움직인다. 주는 만큼 돌려받는 곳. 딱 한 만큼 대가를 치르는 곳.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에누리 없이 계산되는 곳. 합리적인 인간을 상정하고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삼아 작동하는 자본주의 사회가 장류진의 소설에 기본적으로 구축되어 있는 세계다. 이 철저한 시스템 안에서 생존해야 하는 개인은 일, 사랑, 돈, 취미, 인간관계, 젠더 폭력을 고민하면서 울고 웃으며 살아간다. 이를테면 성차별적인 회사 구조에서 입사동기와 결혼한 여성 직장인(「잘 살겠습니다」), 스타트업 회사에 다니며 ‘워라벨’(워크-라이프 밸런스)을 찾는 서른셋의 사원(「일의 기쁨과 슬픔」), 백화점 매니저로 일하며 처음으로 집을 마련한 무자녀 기혼 여성(「도움의 손길」)이 그런 이들이다. 이 작고 평범한 개인들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복잡한 그물망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 이 물음에서 장류진의 첫 번째 소설집이 시작된다.
김초엽의 SF소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미래다. 동시대 현실에서는 아직 가능하지 않은 미래의 과학기술이 우리를 다채롭고 신비로운 세계로 데려간다. 그 세계 안에서 우리는 인간배아도 디자인할 수 있고, 외계에 사는 지성 생명체와도 교류할 수 있으며, 데이터 시뮬레이션으로 죽은 가족과도 만날 수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언젠가는 닿을지도 모를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먼 미래는 아니다. 김초엽이 그려내는 소설 세계는 지금 여기의 사회 문제들을 예리하게 가로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여성, 장애인, 이주민, 비혼모를 비롯한 약자와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은 선명하고, 성과 위주의 시스템 속에서 비경제적인 가치는 배제되며, 정상성이라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존재들은 역사의 기록에서 배제된다. 첨단 과학기술로 인류가 도달한 세계는 정말로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을까?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차별, 억압, 소외, 고통은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을까? 과학기술 자체가 더 좋은 세상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학기술 발전의 귀결이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를 따져 묻는 이분법적인 질문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는 세계와 복잡하게 연루되어 있는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를 구체적으로 상상해보는 과정 자체일지 모른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비정상으로 규정되어 오랫동안 잊혔던 존재를 떠올려볼 수도 있고, 각기 다른 모양을 가진 존재들에게 각기 마땅한 가치를 부여해볼 수도 있으며, 과학기술이 누군가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법을 알려주는 세상을 꿈꿔볼 수도 있다. 그 아름다운 모험의 길을 김초엽의 소설은 우리에게 마련해주었다.
한국과 미국에 나뉘어 살고 있는 한 가족이 단 한 번뿐인 제사를 지내기 위해 하와이로 떠난다는 다소 엉뚱한 상황에서 출발하는 『시선으로부터,』는, 현대사의 비극과 이 시대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 세계의 부조리를 관통하며 나아간다. 미술가이자 작가이며 시대를 앞서간 어른이었던 심시선. 그녀가 두 번의 결혼으로 만들어낸 이 독특한 가계의 구성원들은 하와이에서 그녀를 기리며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장해나간다. 정세랑이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은 무엇보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다”라고 밝힌 것처럼, 『시선으로부터,』는 한 시대의 여성들에 대한 올곧고 따스한 시선으로부터 비롯된 작품이다. 누구보다 이 세계의 난폭함을 잘 알고 있으면서 약한 이들에게 공감할 줄 알았던 여성. 올곧으면서도 부드럽고, 때로는 과격할 정도로 진보적인 발언으로 세간에 논란을 불러일으키곤 했던 심시선 여사의 10주기에, 그녀의 가족들은 단 한 번뿐인 제사를 지내기로 한다. 그것도 그녀가 젊은 시절을 보낸 하와이에서. 그들은 그곳에서 특별한 제사를 준비한다. 방법은 각자 자유롭게 그곳에서 가장 의미 있는 순간들을 수집해 오는 것.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심시선과 연결된 그들은 그녀에 대한 저마다의 기억을 가지고 하와이를 여행한다.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고, 서로를 배려하고, 아름다운 것을 가만히 지켜볼 줄 아는 사람들이지만 조금씩 아픔과 상처를 지니고 있는 그들은, 심시선을 기리기 위한 여행에서 그녀에게 선물할 물건과 추억을 찾으며 자기 자신을 들여다본다.
황정은의 소설에는 늘 삶을 ‘견디어 내는’ 이들이 등장하는데,『연년세세』역시 그러했다. 딱히 행복하다고도 할 수 없는, 결코 기쁘다고도 할 수 없는, 어찌 생각하면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상태에 더 가까운,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멸과 분노를 견디며 꾸역꾸역 살아남는 사람들이 그 안에 있었다. 단편집임에도 4편의 연작소설을 거치며 마치 장편과 같은 느낌을 주는 이 책은 평범한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맞벌이인 큰딸 부부를 도와주기 위해 사돈 명의의 빌라에 들어가 살림을 해주는 노부부 이순일과 한중언, 백화점에서 이불을 파는 그들의 장녀 한영진, 글을 쓰는 차녀 한세진, 그리고 호주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막내 한만수, 그 밖에 한영진의 남편 김원상과 한세진의 여자친구 하미영, 이순일의 이모인 윤부경과 윤부경의 아들 노먼 카일리, 그리고 그의 딸 제이미 카일리의 이야기. 너무 평범해서 주변에서 한두 쯤 흔히 들어보았을 만한 그런 사연들. 이들은 우리 주변의 많은 이들처럼 평범하면서도 매우 전형적인 갈등을 겪는다. 이순일은 한영진의 살림을 도맡고 한영진의 아이들을 돌보느라 하루종일 편히 앉을 틈도 없이 고된 노동을 하는데, 한영진은 엄마를 그렇게 착취하는 대가로 엄마의 짜증과 온갖 물건들과 어린 시절부터 자신에게 생계의 무거운 짐을 지워준 것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견딘다. 또한 이순일은 어린 자신에게 고된 노동을 시켰던 할아버지를 여전히 원망하며 용서하지 못하지만, 동시에 그가 자신의 결혼식 날 노란 약국 봉투에 부조금을 넣어 내밀었던 기억을 이따금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한편 이순일은 시시때때로 어린시절의 동무인 순자에 대한 생각도 한다. 이순일의 유일했던 동무 순자. 식모살이를 하던 이순일에게 마음을 나눠주고, 짜장면을 사주고, 도망가게 해주고, 그러다 다시 붙잡히게도 만들었던 순자. 그런 순자의 뺨을 때렸던 장면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회상한다.
소설은 ‘연쇄살인으로 먹고 사는 마을이 있다면?’ 이런 질문으로 시작한다. ‘살인사건’이 돈이 될 수 있다는 인간의 어두운 심성들이 모여 마을에 기괴한 상황이 만들어지고, 마을 사람들의 과거가 한데 뭉쳐 우리 사회의 어두운 심연을 타격한다. 생존 경쟁에서 밀려나 절벽으로 내몰린 사람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은유이자 돈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을 재화로 만들 때, 개인의 육체는 대상화되고, 불행과 가난은 전시되며 인간은 죽어서도 죽음에 이르지 못한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는 사실을 이 소설은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다. 이 이상하고 기괴한 마을에 점점 마음이 빼앗길 때쯤, 살인을 계획한 사람과 살해를 당한 사람들에 관한 비밀이 한 점의 주저 없이 일사천리로 파헤쳐진다. 2번 국도와 17번 국도가 교차하는 지점에 있는 마을. 이곳은 황폐하고 건조한 평원을 앞에 둔 작은 시골 마을로, 과거에는 트레일러 기사들이나 운전자들이 쉬어가는 중간 거점지였다. 그러나 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운전수들은 더 이상 마을에서 쉬어갈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마을은 주 수입원을 잃는다.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기반 시설 유치에 힘쓰고, ‘건조한 평원과 일출’을 관광 상품화하려 하지만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다.
그러던 차 마을은 전환점을 맞이한다. 건조한 평원에서 살해된 시체 여섯 구가 발견된 것. 희생자는 모두 마을의 젊은이들로, 도시에 가기 위해 마을을 뛰쳐나갔다고 여겨졌던 자들이었다. 그들이 불에 탄 채 평원에 묻혀 있던 사실이 드러난다. 연쇄살인이 공표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마을을 찾는다. 마을은 미디어에 얼굴을 잡아 뜯기며 유명세를 탄다. 수사가 지속되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는다. 얼마 후 살인마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제작되고, 마을에는 세트장이 세워진다. 수많은 타지 사람들이 오간다. 마을 사람들은 연쇄 살인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개봉된 영화가 흥행하면서 마을을 찾는 사람들은 더 늘어난다. 해마다 열리던 마을 축제는 살인 사건을 전시하는 사이코 관광으로 급속히 재편된다. 살인사건은 마을의 역사에서는 흉사였으나, 먹고 살 게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조차 먹잇감으로 받아들여지며 경사로 변해간다. 죄책감, 인간애, 윤리 의식보다 돈과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당위가 앞선다. 그런 와중에 이 소설은 추악한 이기심 앞에 혼신의 힘을 다해 악몽을 희망으로 전복시키려는 한 소녀의 선의 의지를 보여준다. 인간은 잔혹하고 잔인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고통으로 인해 자신을 돌아보며 또 그 고통으로 인해 타인의 마음과 서로 교통할 수 있다는 명확하고 중요한 사실을 소녀로 인해 깨닫게 된다. 아마도 작가는 온통 암흑뿐인 세상 속에서 오롯이 살아남아 희망이 되어야 한다는 간절한 의지의 메시지를 세상에 내보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