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진주에서 뜻을 세웠던 ‘형평(衡平)’운동 100주년이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공식적으로 계급이 없어졌지만 백정에 대한 차별은 여전했던 터라 평등한 대우를 요구했다. 이 운동의 포스터엔 천칭이 그려져 있다. 가운데 줏대를 두고 가로장을 걸치고 양쪽에 물건을 두어 무게를 가늠하는 도구다. 가로장이 수평을 이뤄 균형을 잡으면 ‘형평’이 맞는다. 세상의 모든 불평등에 대한 끊임없는 저울질을 인간이 아닌 존재들까지 확대한다. 올해, ‘비인간’을 주제로 삼은 것은 기울어진 모든 것에 대한 저울질을 멈추지 않겠다는 뜻이다. 형평운동을 기린다.
100년 전에 그들이 이렇게 주장했다. ‘공평은 사회의 근본이요 애정은 인류의 본량이라.’ 여전히 저울이 기운 곳이 많은 형편이라 지금도 그 뜻을 이어야 마땅하다. 거기에 더해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도 저울을 놓고 형평을 따져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당면한 기후 위기가 인간과 비인간들 사이의 불평등 때문이라는 과학적인 데이터들이 쌓이고 있다. 이 위기는 인간들과 비인간들을 모두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위기는 오래된 균형을 깨고 새로운 균형을 찾는다. 이 길에 인간과 다른 생명들이 고통을 겪는다. 지구가 몸살을 앓는다. 우리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2023년 서울국제도서전이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우리는 형평을 맞추고 파국을 막을 수 있을까? 파국이 온다면, 그 이후는 어떤 세상일까?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 아름답겠지만 우리가 없는 미래에 존재할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서울국제도서전은 ‘비인간’을 초대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인간이 지구 위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지혜를 찾는다. 책 속에 길이 있다. 그 길에, 새로운 지혜를 심어 인간과 비인간이 어우러지는 미래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