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끝났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더는 나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시간.
그 끝자락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붙들고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분명히 우리 안에 늘 존재해왔습니다.
누구에게도 완전히 드러난 적 없는, 그러나 결코 사라진 적도 없는 씨앗 하나.
이 전시는 그 씨앗을 꺼내어 서로 마주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곧, 우리의 ‘믿을 구석 The Last Resort’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마주한 씨앗은 가능성입니다.
그리고 가능성은 다른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피어납니다.
이곳은 온실이자 저장고.
다양한 존재들이 각자의 씨앗을 품고 모여드는 이 공간은,
서로를 자라게 하는 순환의 생태계를 이룹니다.
타자는 햇빛이 되고, 물이 되고, 뿌리를 뻗을 수 있는 토양이 됩니다.
그렇게 우리의 씨앗은 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은 단순한 성장의 은유가 아닙니다.
불안과 고립의 시대를 통과하며,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는 신호이자 생존을 위한 교류의 언어입니다.
하지만 이 전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곳은 전이(轉移)의 공간이며, 동시에 산포(散布)의 자리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씨앗 하나를 다시 품고, 저마다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돌아간 자리는 이제, 이전과는 다릅니다.
세상의 끝에서 우리는 시작을 만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