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질서정연하고 합리적이고 현명하며, 정확하게 말하고 공정하게 행동합니다. 또한 무엇이 옳은지 알고 있어 그에 따라 행동하며, 깨끗한 삶을 살면서 평화롭고 평온하게 존재합니다.”
‘후이늠(Houyhnhnm)’은 걸리버가 네 번째 여행지에서 만난 나라(‘말(馬)’의 나라)로, 걸리버 여행기의 저자인 조너선 스위프트는 ‘후이늠’을 ‘자연의 완성’이라고 정의합니다.
‘후이늠’은 육체를 옷으로 가릴 필요가 없고 거짓말이 무엇인지 모를 만큼 순수하고, 완벽한 이성을 가지고 있어 무지, 오만, 욕망, 비참, 전쟁이나 다툼 등이 발붙일 자리를 두지 않습니다. 그들은 탐욕스럽고 유혹에 약하며, 관능에 들썩이고 감정에 휘둘리는 인간의 모습과 흡사한 ‘야후’와는 달리 이성적이며 지적인 생명체입니다.
300년 전의 걸리버는 아무런 의심 없이 ‘후이늠’을 이상적인 존재로 생각했지만, 이토록 완벽해 보이는 ‘후이늠’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들의 세계에도 다른 생명체에 대한 제한된 이해나 오만함 등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걸리버도 ‘후이늠’에서 쫓겨나 현실 세계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이후에도 걸리버는 ‘후이늠’의 세계를 완벽하다고 생각하며 그곳에 닿기를 바랐습니다.
사고의 지평이 한층 넓어진 지금의 우리가 바라본 ‘후이늠’은 결코 이상적인 세계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300년 전 걸리버가 자신만의 ‘후이늠’을 꿈꿨던 것처럼, 우리도 무지, 오만, 욕망, 비참, 전쟁, 다툼 등이 만연한 세계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후이늠’을 꿈꾸며 그곳에 닿기를 원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이 모습은 인간의 어두운 면에서 벗어나 평화와 사랑, 지혜와 아름다움이 가득한 세상을 꿈꿨던 300년 전의 걸리버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2024 서울국제도서전 주제전시 <후이늠>을 통해 막연한 낙관을 넘어서 기꺼이 환대할 현실을 모색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보고자 합니다. ‘후이늠’을 키워드로 큐레이션 된 400권의 도서를 통해 우리가 어떤 미래를 그려야 할지, 어떻게 세계의 비참을 줄이고 미래의 행복을 찾을 수 있을지, 나의 ‘후이늠’ , 그리고 누군가의 ‘후이늠’을 발견하여 결국 우리가 바라는 것들로 가득한 ‘후이늠’의 세계를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